바람이 설렁설렁 왈랑왈랑. 콩밭엔 달빛이 가득하오. 아, 저 달은 작년 이맘때 바로 이 창가에서 바라보던 그 달이구려마는, 그 달은 대답이 없었고 이제는 다른 얼굴이지요.
12-08-02
그리워 할 사람이 있다는건 중요한 일이야. 그는 틈틈히 일상을 벗어나 찾아갈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. 연락이 되건 되지 않건 상관은 없어. 애달픈 그리움도 들뜬 그리움도 차이는 없지.
우리 작은 고모부 박석기 선생은 박학다식하시고도 참 다정하셨다.
그분의 지성은 일을 통해 잘 드러났겠지만, 조카로서 기억하기에 당신과의 대화는 언제나 수평적이었다. 대화하면서 어리다거나 생각이 다르다고 무시당한 기억이 없다. 날카로울 수 있는 민감한 토픽에선 예의 방대한 지식과 이슈의 틈바구니에 날 빠뜨려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하셨을 뿐.
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나의 면면을 드러내어 주목하고 격려해주시던 분이기도 하다.
이제야 깨닫지만, 나는 고모부같은 어른이 되고싶었다.
그분의 장례식장에서, 특별히 사랑받았던 조카로서 나는 상주들과 나란히 서서, 그 자그마하고 상냥하고 유쾌한 신사를 그리워하고 있다.



